우치(吳騏)는 대만의 문창 산업 속에서 독자적 스타일을 지켜온 신예 일러스트레이터다. 이번 글은 그의 고압적 창작 세계와 공공미술, IP 전환 과정을 담았다.
키가 크고 곱슬머리의 그는 침묵할 때면 마치 자신만의 별에 숨은 사람 같다. 하지만 창작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의 말은 멈추지 않는다. 예명 57은 본명 발음의 변주로, 그는 상업과 예술 사이를 오가며 작업한다. 우치의 환상적 낙원은 캔버스를 넘어 건물 외벽과 농구장까지 확장되었다. 작품은 대만 전역, 특히 고향인 금문(진먼, 대만의 섬)에 집중되어 있다. 도자 제작과 대형 설치까지 매체를 넘나드는 그의 작업은 최근 공공 공간과 상업 프로젝트에서 자주 목격된다. 예컨대 타이베이 완화구의 거리 재생 프로젝트, 타이난 란사이 문화창의원지, 금문 해양예술제와 풍사제(風獅爺) 채색 농구장 등이다. 특히 고향 금문에는 대형 작품 18점이 설치되어 있다고 전한다.



천칭자리의 성격을 닮아 그는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다. 압력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가족을 예술로 이끌기도 했다. 겉보기엔 자유분방하지만 실상은 규율을 지키는 사람이다. 우치가 그리는 새 인간, 꿈의 짐승, 그리고 ‘비카’라 불리는 삼두 조류 캐릭터는 수많은 눈으로 이 미친 세계를 바라본다. 각 작품은 스스로에게 건네는 외침이자 자기 고백이다.
우치: “그냥 순수하게 그림을 좋아한다”

우치의 작업실은 타이베이 고층 자택의 방 한 칸이다. 창밖으로 도시 스카이라인이 보이는 곳에서 그는 밤낮없이 작업한다. 사회관계망의 연간 작업량을 보면 그의 산출량은 놀랍다. 그는 “손이 영감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뿐”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2017년 전후로 겪은 몇 년간의 암흑기를 견디며, 그는 11점의 흑백 시리즈 ‘악작묵극’으로 감정을 털어냈다고 회고했다. 그런 경험이 목표를 더 분명히 했다고 한다.
연재 참고 기사:
- 류덕화가 주최한 아트 전시와 현대미술가들과의 협업
- 9월 공개 예정 드라마 추천, 한국판 ‘想見你’ 등
- WOAW Gallery 완차이 신개관, Taedong Lee와 Kitty Ng 개인전

금문에서 자란 그는 수업 시간마다 그림을 그렸다. 터틀 넥 닌자 거북이나 람보를 모사하던 시절을 지나 타이베이의 복흥미술고(復興高級商工職業學校)에 진학했다. 제도권 미학 교육은 그의 색채 세계를 뒤흔들었다. 우치는 당시를 “복흥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심지어 전학을 권할 정도였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형도 같은 학교에 다녔으며, 학업 압박 속에서 오히려 놀라운 성실함으로 과제를 남보다 수배로 제출하며 자신을 증명했다.

고압적 환경이 오히려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는 “압력 속에서 원하는 에너지를 찾을 수 있다, 압력이 나에게 자극이고 창작의 동력이다”라고 말했다.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된 집념은 그의 원동력이다. 우치는 “그냥 순수하게 그림을 좋아한다, 어쩌면 내가 이 길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 길을 원해서다”라고 밝혔다.

우치의 작업 원칙: “예술과 상업은 적절한 타협이 필요하다”
우치는 대학 진학을 창작의 진정한 전환점으로 꼽는다. 그는 국립타이완예술대학에서 미학을 다지며 일러스트레이터로 방향을 잡았다. 당시 대만 일러스트계의 주류 스타일을 모사하라는 압박을 느끼자 그는 스스로 반년 동안 절제된 수련을 통해 고유의 스타일을 찾았다. 그 결과 탄생한 ‘정사각주의’ 작품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했다고 전한다.


우치: “계속 자신을 강제하라”
자신의 약점을 아는 그는 목표를 세워 스스로를 밀어붙인다. “나는 어릴 때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서 항상 스스로에게 외쳐야 했고 단계별 목표를 세워서 강제하지 않으면 못 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태도는 압력을 긍정적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그의 핵심 전략이다.
우치의 협업 원칙: “매 작업에서 배워야 한다”

상업적 모델 안에서 예술성을 유지하는 것은 또 다른 난제다. 우치는 초반에 많은 양보를 경험했고, 그 과정을 통해 원칙을 세웠다. 그는 “협업에서 반드시 본인이 배워야 한다, 마지막 결과물은 네가 좋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 작업에서 색을 16번 바꾼 경험을 통해 파란색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17년의 경력으로 이어졌다.


우치와 IP 예술: “현대미술이 IP화될 수도 있다”
그의 작품에는 반복적으로 새 인간과 꿈의 짐승이 등장한다. 아직 명확한 IP로 자리잡지 않았지만, 2017년에 창조한 한 캐릭터는 최근에 IP화하기로 결정했다. 우치는 이 삼두 조류 캐릭터를 ‘비카’라 명명했고, 자유와 사상, 그리고 금전성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우치는 IP 시대의 흐름을 인정하면서도 창작의 본질을 지키려 한다.



홍콩의 예술 신에 대해 우치는 긍정적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홍콩에서 전시 기회를 얻으려면 명확한 IP가 필요하다는 주최 측 조언을 전하며, 홍콩의 IP 기반 아트 생태계가 성숙했다고 평가했다. 우치는 홍콩의 신예 작가들과의 교류에서 자극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의 색조와 형상은 시기마다 달라지지만, 작품에는 늘 하나 이상의 눈이 등장한다. 그는 일상 사물을 관찰하다가 그 물건이 다리가 달린 생명체가 될 수 있다고 상상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상은 결국 눈을 통해 생명을 부여하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새 인간의 기원은 일본의 국제 버드맨 대회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대학생들의 변장과 비상 장면이 그에게 자유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예전엔 내 작품이 타인과 대화하는 줄 알았는데, 결국엔 나 자신과 대화하는 형태로 돌아왔다”라고 말했다. 감정을 밑거름으로 삼아 캐릭터를 키워나가고, 시간이 지나 이를 IP로 전환하는 과정이 그가 지키려는 리듬이다. 상업적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것을 만들려는 태도에 그는 우려를 드러냈다. 많은 미술 졸업생이 시장 친화적인 귀엽고 즉물적인 그림으로 생계형 창작을 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영원히 남을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도 그의 압박 중 하나다. 그는 “나중에 늙어서 돌아봤을 때 남긴 작품이 없다면 큰 압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과 타인을 채찍질해 얻는 광기는 그가 기묘한 낙원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금문에 남기는 미감: “금문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아름답게”
타이베이에서 미학을 배웠지만 금문을 잊지 않았다. 현재 금문에는 그의 대형 작품 18점과 금문 유일의 맥도날드 외관 디자인이 있다. 우치는 금문에서 공공 공간 디자인에 참여할 기회가 있어섬에 미적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관료적 제약과 보수적 환경은 종종 좌절을 낳는다. 색채가 칠해진 전기박스가 다시 원상 복구되는 일도 있었고, 그가 만든 ‘삼림령 시리즈’ 거대 등불은 철거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실망감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금문 후포십육 예문 특구에 ‘새의 섬(鳥嶼)’ 작업실을 세웠다. 이곳은 금문의 풍사제 문양을 활용한 문창 상품과 도자 공예를 생산하는 공간이다. 우치는 “금문은 새의 집 같다, 밖에서 경험을 쌓아 다시 가져와 순환을 만들고 싶다”라고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고향에 미감을 환원하려는 그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Producer: Mimi Kong
Interview & text: Kary Poon
Photographer: Wei
Video Edit: Kason T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