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엘라의 개인 아카이브 200여 점이 파리에서 전시되고 경매로 공개된다.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는 현대 패션계에서 익명성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다. 그를 알리는 대표적 상징은 흰색, 숫자 라벨, 옷 뒤의 네 줄 박음질, 그리고 분趾 부츠 Tab 이다.

마르지엘라의 상징과 익명성
마르지엘라의 작품은 스스로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만든다. 그는 본인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작품과 집단의 목소리를 내세웠다.
브랜드 라벨은 빈 흰 천만 남기고, 제품 뒷면에는 네 줄의 박음질로 정체를 드러낸다. 모델들은 종종 얼굴을 가린 채 런웨이에 섰다. 이런 방식을 통해 의복의 구조와 개념을 강조했다.
탄생과 경력: 앤트워프에서 에르메스까지
마르지엘라는 1957년 벨기에 Genk에서 태어났다. Royal Academy of Fine Arts Antwerp를 졸업한 뒤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1984년에 장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 팀에 합류해 수년간 수련했다. 이후 1988년 파리에서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tin Margiela)를 창립했다.

1997년에는 전통적인 명품 하우스 에르메스(Hermès)의 여성 컨템포러리 컬렉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는 기존 클래식 디자인을 재해석하며 Cape Cod 시계 스트랩의 ‘더블 투어’ 착용 형식을 제안했다.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그는 모든 팀원이 동일한 흰색 작업복을 입도록 했고, 공개 발언은 브랜드 명의로 전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이는 창작을 개인의 성과로 한정하지 않겠다는 철학의 표현이다.

작품 세계와 백색 미학
마르지엘라의 흰색은 깨끗함을 뜻하지 않는다. 그는 빈티지와 재활용 재료를 활용해 옷의 구조를 해체하고 재조합했다. 이런 방식은 당시의 호화와는 정반대였다.
그의 첫 번째 쇼는 1988년 파리 외곽의 폐공장에서 열렸다. 관객은 오래된 나무판자에 앉았고 모델은 흰 작업복을 입고 벽돌 사이를 지나갔다. 이 행위 자체가 그가 패션 산업에 던진 문제 제기였다.
그는 작업실, 전화, 수화기, 심지어 모델의 얼굴까지 흰색으로 칠하는 Bianchetto 기법을 사용했다. 불균일한 도료층은 익명성을 부여해 옷의 구조에 주목하게 했다.
은둔과 재등장, 그리고 유산 정리
마르지엘라는 2009년에 패션계에서 은둔했다. 이후 미술 활동을 이어갔다. 오랜 기간 비공개로 보관해온 개인 자료를 이제는 세상에 내놓기로 결정했다.
그가 직접 정리한 자료는 사진, 디자인 스케치, 작업복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유산은 그의 기억이자 이야기이며, 마지막으로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고 그는 전했다.

과거에도 소더비(Sotheby’s)에서 대규모 경매가 열린 바 있다. 2019년 소더비 경매에서는 마르지엘라 관련 컬렉션이 다수 거래되었다. 이후 2025년에는 Maurice Auction과 Kerry Taylor Auctions가 공동 주최한 경매가 열리기도 했다.
이번 경매는 특히 의미가 있다. 직접 정리한 소장품이 경매에 부쳐된다는 점에서, 작가가 자신의 기록을 스스로 전달하는 최초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번에 공개되는 소장품은 1984년부터 2008년까지의 작품과 기록을 포함한다. 총 약 200여 점이 전시와 경매의 대상이다. 또한 그가 어머니에게 선물했던 에르메스 의상 60여 점도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주요 소장품 소개
소장품 1: Blouse Blanche (1988–2008)

이 흰색 면 작업복은 메종 마르지엘라 초기부터 팀이 착용하던 의상이다. 마르지엘라는 이 옷을 작업 중 실제로 입었다고 전한다. 한 벌의 옷이 20년의 기억을 담는다고 그는 말했다.
소장품 2: The Veil (1988–2008)

마르지엘라는 모델의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베일을 제작했다. 이는 관객의 시선을 인물에게서 의복으로 옮기기 위한 장치다. 해당 작품은 연필 수정 흔적이 남은 연구용 드래프트도 포함한다.
소장품 3: Telephone (1988)

그는 작업실의 모든 것을 흰색으로 칠했다. 전화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신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해 전화기에 번호를 적어 두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소장품 4: Graffiti Tabi (1991)

분趾 형태의 Tabi 부츠는 일본의 작업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초반에는 이해받지 못했지만 런웨이에 꾸준히 등장하며 상징적 아이템이 되었다. 전시 당시 관객이 부츠에 직접 낙서를 하며 생긴 흔적도 보존되어 있다.
소장품 5: Double Tour 스트랩 워치

마르지엘라는 에르메스에서 활동하던 시절 Cape Cod 시계 스트랩을 두 배 길이로 연장해 착용 방식을 바꿨다. 그는 여성의 힘을 상징하는 새로운 방식의 착용을 의도했다고 설명했다.

전시·경매 일정과 장소
MARTIN MARGIELA ARCHIVES PERSONNELLES
전시 기간: 2026년 7월 4일 – 7월 8일, 운영 시간 11:00–18:00 (CEST). 경매 일시: 2026년 7월 9일 14:00 (CEST). 장소: 71 rue de la Fontaine au Roi, Paris 11th arrondissement.
이번 전시와 경매는 Maurice Auction, Kerry Taylor Auctions가 주최한다. 소장품은 마르지엘라 본인이 직접 분류하고 설명을 붙인 자료들이다.
이 유산은 패션사적 가치가 높다. 마르지엘라는 자신의 기록을 세계에 분배함으로써 작품의 의미를 확장하려 한다. 이는 패션이 개인을 넘어선 ‘사유’임을 증명하는 과정이다.


